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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뇌
첫 글, 입사를 하면서 본문
나는 개발자로 입사했다.
인턴 5주차에 접어드는 지금, 월요일을 앞두고 정말 멋진 학원 동기에 의해 첫 글을 쓰게 되었다.
새삼스레 IT계열에 취직했다고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참담하기도 하다. 어떤 제반지식이나 학력, 인맥 없이 뛰어들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첫 직장에서 "아, 나는 민폐덩어리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떨어지질 않고 있다.
아득한 선배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네는 사람이 아니야."
흠, 충분히 기분 나쁜 말이고, 물론 불쾌했다. 그것은 말투나 취급에 대한 반항보다 장난조로 던졌음에도 너무나 강한 진실성을 담고 있었으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왜 이 취급을 받아야하지?' 가 아니라, '아... 이런 것도 모르는구나.' 하는 내 자신에 대한 분노와 어처구니 없음이었다.
6개월의 국비지원교육을 받으면서 내 눈이 더욱 높아진 것도 있었다. 실질적인 기술도, 지식도 없으면서 눈만 높아졌던 것이다. Python, Java 언어를 접하면서, 각종 코드와 프로젝트, 혹은 어떤 완성물을 접하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으니까 난 무조건 할 수 있을거야! 라는 가소로운 자신감이 커졌던 것이다.
허나 고작 1,000시간으로 여러 언어와 Tool, Editor나 신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이 과정은 학사 졸업한 대학생들이 들을만한 내용이고, 석사 과정을 밟는 사람도 쉽게 배울 수 있는게 아니에요." 강사님도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1개월이 지나면서 마음은 느슨해졌고 취직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아닌 학교를 맹목적으로 다니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게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패인이라고 생각한다.
5년 2개월의 군 생활을 끝마치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틈틈히 공부했다지만 내 수준은 정말 턱도 없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훈련이나 당직, 작전으로 출석을 못하니 교수님들은 수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필연적으로 좋은 성적은 출석률이 높은 학생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렇게 전문대를 졸업하였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에 그 안정적인 군 간부도 그만두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길을 가겠다며 사회로 발을 내딛었다. 막상 전역한 후의 생활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것이었다. 1주일이 지나고 '아,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돼'라는 초조함에 졸업한 학교의 학과장님을 찾아갔다. 아슬아슬한 시간으로 나는 국비지원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군생활이 인정되어 6개월 기간에 정보처리기사를 취득했다. 다른 여러 자격증에도 눈독 들였지만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내 남은 기간은 그냥저냥 흘러가버렸다. 수료의 날이 다가와버렸다.
수료 이후에도 뭔가 확 달라지진 않았다. 마음먹은대로, 다짐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 마음가짐이 약한 것도 있었고, 외로움과 지침을 핑계로 집에 박혀 게임 안으로 도피해버렸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편한 것만을 고집한 4일이 흘렀다. 4일. 그 4일 동안 편안했었다. 동시에 초조해했고, 대체 뭘 하고 있는건가, 라는 압박도 왔었다. 목표했던 '나'와 현실의 '나'가 너무 멀어지고 있다 느껴버렸다.
수료한 학원의 취업지원분야의 대리님께서 여기저기 많은 곳을 알려주셨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정장을 구입하고 증명사진을 찍은 후 어떤 이력서의 수정도 없이 마감 1시간 전인 한 IT회사에 무작정 면접지원을 넣었다.
3일 뒤, 수료한 학원의 강사님이 생일이어서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갔더니 대리님을 통해 지원했던 회사에 면접이 잡혔다고 알려주시더라. '어??' 당황하면서 스마트폰을 켰는데 문자가 와있었다. 내가 지원했던 회사에서 서류가 통과되어 간단한 코딩테스트를 병행한 면접을 본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순식간에 2개의 면접이 잡혀버린 것이다. 어떤 준비도 안한 상태로 2개나. 당장 2일 뒤와 4일 뒤에 다가올 면접이었다. 부랴부랴 기술면접 내용을 찾아보고 교육 때 썼던 책을 펼쳤다. 어떤 것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한 채 하루가 지났고, 설명을 하라면 할 정도는 만들자며 억지로라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코딩테스트에 생각이 닿아 알고리즘 사이트의 문제를 찾아보았다. 왠걸, 나는 1단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아, 큰일났다. 당장 내일인데...' 사람은 급박한 상황이 오면 극복하거나 포기한다더니, 나는 자포자기를 한 것 같다. 근거 없는 자신감, 아니 자만심이 샘솟아 오르더니 '그래, 그냥 말만 잘하면 돼!' 라며 성큼성큼 문을 나섰던 것 같다.
현실의 냉정함, 나의 하찮은 자존심이 깨지기까진 그리 걸리지도 않았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면접을 끝냈는데, 남은 코딩 테스트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것이다. 3문제 중 한 문제도 풀지 못했으니까. 1시간 동안 내 아집이 깨지는 쓰라림과 통쾌함을 맛 보았다. 무슨 근거로 취직을 하려했는가, 나는 대체 뭘 공부하고 이런 자신감을 내비친 것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축축 처졌다. 회사의 문에서 나오자마자 메일이 왔다. 내용은 보지 않아도 알았다. 불합격이라는 통보. 첫 정장과 반짝이는 구두를 질질 끌며 학원 동생과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제대로 마음 잡고 간다고 하소연을 했었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각오는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단 하루도 지키지 못하고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집에 처져있기만 했다. 어차피 내년까지 준비할거였으니까, 어차피 취직할 생각 없었으니까, 어차피, 어차피...
면접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다시 꺼내든 정장을 입은 채 과거와 똑같은 나는 면접장으로 향했다. 결과는 합격. 최종면접이 정해졌고, 죽으려고 하던 내 자만심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집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고 싶을 때 잠을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으며 집 안에 숨어 지냈다.
그 무렵, 학원의 동기들끼리 스터디를 만든다며 같이 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지를 올렸다. 아, 이거다. 내가 변하려면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과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곧바로 스터디에 합류하여 기술면접과 딱 두개 겪은 면접을 토대로 뭐든걸 아는마냥 떠들어댔다.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나는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겉만 알고, 책의 문장만 외웠으니 질문과 진행되는 원리, 과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최종면접은 천천히 다가왔다. 어떻게든 책을 펼치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ppt를 만들었다.
당일, 나는 너무 잘해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으며 진짜 공부해야된다,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다시 없을 절실함이 나의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더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연한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력도 안하고, 시간 투자도 없었으며, 있는 거라곤 고집과 자존심만이 다였으니까. 기술면접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펼쳐 필기를 함과 동시에 코드를 짜보기 시작했다. 겨우 몇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6개월동안 영혼없이 다녔던 '나'보다 많은 지식을 머리속게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합격했다.
대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추가합격이라고. 의사결정을 해달라고 저녁에 온 연락에 나는 혼란과 함께 분노, 한심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수십번이고 문자를 읽어보았다. 합격한 사람이 가지 않겠다고 결정해서, 추가합격이 됐다. 비참한 기분이 제일 컸다.
그 날 밤을 샜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며 기술면접 내용을 정리하고 최대한 깔끔히, 직관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했다. 나 뿐만 아니라 학원의 동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나같은 비참함을 더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회사와 관련된, 나의 미래와 연관된 많은 생각들이 나를 뒤흔들었지만 최대한 기술면접 정리에만 집중했다. 이제부턴 내가 도망갈 길을 만들지 않겠다고.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으로 몰아넣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지금 겪은 이 기분을 놓지 않아야 내가 성장할 수 있을테니까.
출근일자가 정해지고, 나는 기술면접 정리에 박차를 가했다. 학원 동기들도 하나둘씩 합격하기 시작했고 점점 면접에 무감각-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였다. 그들의 절실함과 노력은 서로에게 너무 훤했다.
인턴으로 입사를 하고, 하루가 다르게 나는 깨졌다.
자만심이 살아날 수 없을 정도로 깨졌다. 옳은 소리만 듣고, 그른 행동을 수정하고 있다. 짜증과 분노는 상사가 아닌 나를 향했다.
스트레스는 없었다. 내가 나아가려고 한 건 에베레스트였는데, 정작 내가 있는 장소는 놀이터의 모래밭이었다. 초조함만이 나의 발목을 잡아 끌고 있었다.
개발자 사이트를 많이 찾아보고, 선배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으며 구글링을 하기보다 책을 먼저 참고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정리를 하거나 노트에 필기를 해보고, 이해가 안되면 출력을 해서 출퇴근길에 읽기 시작했다. 개념도, 이해도 안되지만 단어는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스터디를 구하고 세미나에 참여하며 과외나 강의에 돈을 내고 배우기 시작했다. 기초부터, 절대 욕심부리지 말고 기초부터 기르자는 생각에 아주 기초부터 시작했다.
이제 5주차에 접어든다. 나는 아직도 사람이 아니다. 신입, 인턴. 단어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IT 개발자의 길을 막 시작한 나는 지금밖에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 곧 있으면 '일'을 할 테니까. 선태과 집중, 놀아야 할 때와 공부해야할 때가 있다면 지금은 공부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당면한 과제를 최대한 클리어하자고 하루하루를 독려하고 있다.
그 탓에 혼잣말은 많이 늘어버렸지만...
오늘도 힘내자며 거울의 나에게 파이팅하는 것은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